❚ 이수형 샤인동물메디컬센터 마취과장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에게 마취할 일이 없다면 가장 좋겠지만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아프거나 뜻밖의 사고로 어쩔 수 없이 마취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사람은 증상에 대한 진단을 위해 컴퓨터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촬영(MRI)을 하게 되거나 스케일링을 받기 위해 전신 마취할 필요는 없지만, 강아지나 고양이는 해당 과정을 마취 없이 진행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로 인해 마취 위험도가 높은 반려동물인 경우 보호자는 위험을 감수하고 마취를 진행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보호자들이 평소 반려동물의 마취에 대해 궁금증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금부터 마취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고려사항, 그리고 마취 후에 나타날 수 있는 일에 대해 미리 알아보며 궁금증을 해소해보자.
마취란 무엇인가
마취란 의료 행위를 위해 ‘일시적으로 의식, 감각, 운동 및 반사 작용을 차단한 상태’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의식 소실 ▶진통 ▶근육이 이완된 상태의 세 가지 요소가 충족돼야 하며, 해당 요소 중 최소 한 가지의 효과는 나타낼 수 있는 약제를 조합해 진행한다. 또한 여러 가지 약제를 사용하게 되면 서로 다른 기전으로 작용하면서 안정성을 더욱 높여주며 한 가지 약물만 사용했을 때보다 용량을 적게 사용하게 돼 부작용이 나타날 확률을 줄일 수 있고 균형 마취를 달성할 수 있다.
마취의 안정성
마취의 안정성은 각 반려동물의 기본 건강 상태나 기저질환, 체중, 품종, 나이 등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모든 검사 이후에도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국내에서 마취 안정성에 대한 전문적인 자료는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 동물마취의사회가 제시하는 ‘마취의 사유와 나이에 따른 사망률 추정치’를 보면 반려동물의 나이가 많아지고 질환의 중증도가 높을수록 사망률이 올라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비교적 건강한 환자도 마취제에 따른 알레르기 반응 등으로 응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마취라는 과정 자체가 가진 위험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
마취 방법
반려동물의 마취방법을 간단히 분류하면 기도 삽관을 통해 마취 가스를 이용한 흡입 마취, 마취 성분의 약물을 혈관을 통해 주입하는 주사 마취, 특정 부위의 말초신경을 차단하는 국소 마취가 있다. 흡입 마취는 마취제의 투여·배설이 폐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주사 마취보다 마취의 깊이를 조절하는 것이 비교적 쉬운 편이고 임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환자 상태에 따라 마취 방법이 결정되긴 하지만, 흡입 마취를 진행한다고 해도 마취를 하는 목적에 따라 추가로 혈관을 통해 진통제가 들어갈 수 있고 필요하다면 국소 마취를 함께 해주는 것이 안정적인 마취와 이후 환자의 통증 관리에 도움된다. 따라서 마취 종류를 따로 나눠 생각하기보다 종합적인 진행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마취제의 종류와 부작용
흡입마취의 경우 기도 안에 튜브를 삽입한 후 마취 가스와 산소를 동시에 주입해 마취 상태를 유지한다. 마취 가스의 용량을 실시간으로 조절해 마취의 깊이와 시간을 조절하기 때문에 수술 중 호흡에 이상이 생기거나 응급 상황이 발생해도 상대적으로 재빠른 대처가 가능하다. 하지만 기도로 관이 들어가는 과정이 환자의 호흡기에 자극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마취 후에 일시적으로 기침 등 호흡기 관련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증상이 장기간 지속하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주사 마취제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고 여러 약제를 조합해 사용한다. 각 약물에 대한 기전과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특정 약물은 주입하는 용량에 따라 무호흡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하고 약이 작용하는 시간을 고려해 과다 투여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펴보며 용량을 결정해야 한다.
마취 중 가장 흔하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은 저혈압이다. 혈압이 낮다는 것은 각 장기로 전달되는 산소와 에너지가 감소한다는 뜻이므로 장기가 손상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마취 중 혈압 관리가 매우 중요하고 마취를 하는 수의사의 경험과 사전 검사를 통해 반려동물의 상태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야만 수술 중 응급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다. 마취 후 오줌의 양이 감소하는 등 반려동물이 평소 상태와 다르다면 수의사와 상담이 필요하다.
마취 과정
마취는 총 5단계로 구분한다.
①마취 전 단계는 병력 청취, 혈액 검사, 흉부 영상 검사, 소변 검사 등의 사전 검사를 통해 해당 환자의 마취 위험도를 평가한다. 위험도에 따라 항생제, 진정제, 진통제 등 분류에 따라 어떤 약물을 얼마만큼 투여할지 결정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특정 약제에 대한 거부 반응이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②도입 단계에서는 주사를 통해 마취제를 투여하거나 기관 삽관으로 흡입 마취를 시행해 마취 상태를 만든다.
③유지 단계에서는 수술 및 처치 시간 동안 마취 상태를 유지하고 반려동물의 바이털 사인을 확인하면서 환자 상태를 감시하며 저혈압이나 서맥 등의 상태 변화가 있을 시 필요한 처치를 시행한다.
④회복 단계에서는 마취에서 깨어나 정상 상태로 회복될 때까지 지켜보면서 저산소증을 방지한다.
⑤마취 후 단계에서는 수술과 처치로 인한 통증이 발생하지 않도록 진통제 등을 투여하고 수액을 처방해 환자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마취 전 사전 검사가 필요한 이유
마취하는 것 자체가 반려동물에게 위험이 따를 수 있는 행위이지만, 환자의 치료와 진단을 위해서는 마취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존재한다.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마취를 위해서는 반려동물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상황을 예측해 미리 대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마취는 반려동물의 건강 상태, 나이, 체중 등에 영향을 받으며 특히 뇌, 심장, 폐, 간, 신장 등 주요 장기의 상태에 따라 마취제의 종류와 용량을 결정해야 한다. 이로 인해 사전 검사를 통해 장기의 기능 이상을 확인한 후 마취를 진행해 위험성을 줄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평소에는 큰 불편함 없이 생활하는 것처럼 보여도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장기가 존재할 수 있다. 특히 나이가 많은 경우 주요 장기의 기능이 전반적으로 감퇴하며 상태가 이미 나빠진 경우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사전 검사를 하지 않고 일반적인 방법으로 마취를 진행하는 것은 추천되지 않는다.
보호자가 주의해야 할 점
모든 동물병원이 대학병원에서 수술할 때처럼 집도의와 마취의가 나뉘어 함께 수술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보호자가 많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동물병원 중에서 특정 질환의 전공의와 마취과 전공의가 함께 수술하는 경우는 드물다. 전국에 수의과대학은 10개가 있으며 1년에 500~600명의 수의사가 배출된다. 그중 마취통증의학과가 있는 곳은 서울대와 경북대 두 곳뿐이며, 한 해에 2~3명의 마취과 전공의가 나온다고 하니 현실적으로 마취과 전공의가 있는 동물병원은 찾기 힘들다.
수의사도 전공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할 순 없다. 특히 마취 수술 중 생기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마취과 전공의만큼 잘 대처하긴 힘들다. 이렇다 보니 동물병원에서 수술해야 한다면 우선 마취과 전공의가 있는 큰 동물병원을 선택해 수술하고 만약 마취과 전공의가 없다면 수술 경험이 많은 전공의가 있는 동물병원을 선택할 것을 권장한다.